북인도 정탐 보고서
기간: 2009. 9. 7 - 9. 16
정탐 지역; 델리 -> 아그라(타지마할) -> 알라하바드 -> 바라나시 -> 보다가야-> 파트나 -> 델리
인원: 9명
9월 7일 저녁 8시에 델리 공항 국내선 터미널에 도착하여 다시 국제선 터미널까지 택시를 타고 가니 한국에서 오는 팀의 도착예정시간이 여전히 남아있었지만 안내 전광판에 비행기가 도착했다는 표시가 되어 있었다. 늦게 도착하였기에 혹시나 하는 불안에 운전사들이 들고 있는 간판에서 팀들이 타고 온 비행기를 확인한 후 안도의 숨을 쉬고 족히 1시간을 넘게 기다린 후 한국에서 오는 팀원 7명을 맞았다. 후덥지근한 날씨속에서 사이드 밀러도 없는 프리페이드 택시를 타고 예약한 게스트하우스로 갔다. 택시가 심상치 않은 골목길로 들어서는 순간 게스트 하우스를 예약한 나는 잠시 불안에 떨었다. 택시가 도착한 건물이 깔끔해서 불안은 내려놓았지만 안에 들어가서 방을 확인한 후 안심할 수 있었다. 피곤했지만 예배를 드리고 정탐에 대한 일정을 간략하게 나누니 밤 12시가 훌쩍 넘었다.
9월 8일 중국 선교사로서 6년간 사역하다 풀러 신학교에 박사과정 마치러 가는 조 선생님이 합류하여 오후에 타지마할이 있는 아그라로 이동하게 되었다. 조선생님 일정을 맞추기 위하여 기차 티켓을 취소하고 다시 예약했기에 기차역은 뉴델리역이 아닌 델리의 변두리 역에서 아그라행 기차를 타야했다. 그때만 해도 기차의 연착에 대해서 생각한 적이 없었다. 기차역에서 기차는 정시에 오지 않았고 연착되기 시작했다. 거의 한 시간을 기다린 후 기차는 도착했고 아그라에 도착했을 때에는 거의 한 시간 반이나 연착이 되었다. 오후 6시까지가 타지마할 입장시간이었지만 우리는 20분전인 5시 40분에 아그라 역에 도착했고 타지마할 입구에 도착해서 열심히 뛰어서 매표소에 오니 6시 5분, 매표소 문이 내려졌고 사정해도 어림없고 내일 오란다. 아쉬움....미련...팀들에게 미안함...1시간 30분 연착한 기차가 미워졌다....
타지마할의 입구 문은 열려서 있었지만 출구의 역할만 하였고 표가 없는 우리들에게는 그림의 떡이었다. 그림의 떡을 뒤로하고 타지마할 주위의 마을을 둘러보다가 마을의 높은 곳에서 타지마할을 볼 수 있는 식당 옥상에 올라가서 타지마할을 멀리서 바라보았고 비를 맞으면서 기도했다. 타지마할에 들어가지 못한 아쉬움이 가득했기에 기도중에 성령께서 타지마할을 보기 위해 왔느냐는 꾸짖는 마음을 주셨다. 남들처럼 똑같이 타지마할을 보고 감상하였다면 타지마할을 둘러싸고 있는 동네는 보지 못하고 지나쳤을 것이다. 숭배의 대상이 되어있는 타지마할 또한 하나의 거대한 영적 싸움의 대상으로서 기도해야 할 장소임을 깨닫게 했다. 저녁을 먹기 위하여 식당에 앉아 있으면서 모스크(회교 사원)에서 나오는 음악을 통해 타지마할(사쟈 한의 왕비 묘)을 둘러싸고 있는 영적인 기류를 읽을 수 있었다.
저녁 9시 40분 기차를 타고 알라하바드로 향했다. 처음으로 슬리퍼 칸의 의자 침대에서 밤을 맞았고 9일 새벽 5시에 알라하바드 역에 도착했다. 연착을 해도 좋을 법한테 동이 트는 희뿌연 새벽에 연착하지 않고 정시에 가깝게 도착했다. 외국인들이 많이 찾지 않은 곳이어서 시선이 집중되었다. 알라하바드에서 침례교 소속 선교사님이 운영하시는 열방 기도 센터에서 머물 수 있었다. 알라하바드에 대한 정보를 찾던 중 인터넷을 통하여 연락처를 보고 연락했을 때 선교사님께서 이상한 전화가 왔다라고 사모님께 말씀하셨다고 알라하바드를 떠나오던 날 들을 수 있었다. 알라하바드는 네루의 고향이기도 하지만 도로에는 자전거 릭샤가 대부분이였다. 인도 시골의 한 모습을 볼 수 있었고 눈에 보이는 십자가를 찾아 볼 수 없었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한 믿음이었다. 알라하바드는 갠지즈 강과 야무나 강이 만나는 상감(sangam)이 있는 힌두교의 요충지로서 매년 1월 15일부터 2월 15일까지 열리는 메그 메라와 12년마다 열리는 꿈브 메라 축제에서 많은 힌두교도들과 사제들이 나체로 상감으로 몰려와서 텐트를 치고 살면서 인골을 먹고 상감지역에 가서 죄를 씻기 위해 목욕을 하고 단체로 거리를 나와 나체 행진을 하는 강한 힌두교 지역이다. 상감지역에는 많은 힌두교를 상징하는 주황색 깃발이 날리고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배를 타고 상감에서 몸을 물에 담그고 있었다.
“너를 위하여 네가 만든 신들이 어디 있느냐 그들이 네가 환난을 당할 때에 구원할 수 있으면 일어날 것이니라 유다여 너의 신들이 너의 성읍 수와 같도다”(렘2:28)
수많은 힌두 우상을 섬기면서 구원을 얻기 위해 발버둥치는 그들의 어리석음을 보면서 지옥문으로 향하는 영혼들을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급한 마음을 만날 수 있었다. 사탄의 강성한 진속에서 느끼는 답답함이 가득했지만 희망이 되어 준 것은 그곳에 신학교와 알라하바드 농대에 신학과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곳곳에 하나님께서는 어둠으로 가득찬 우상의 땅을 밝힐 빛을 심으시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알라하바드(Allahabad)의 상감(Sangam)에서 몸을 담그는 힌두교도들
9월 10일 오후에 알라하바드를 떠나서 저녁에 바라나시에 도착했다. 역시나 기차는 평균 한 시간이상 지연되는 것이 보통이었고 정시에 도착한 기차를 알라하바드 이외에서는 만날 수가 없었다. 어렵게 예약한 게스트 하우스에서 처음 계약한 것을 번복하고 한 푼도 디스카운드 해 줄 수 없다고 오리발을 내밀었기에 숙박비 때문에 약간의 언쟁이 있었다. 밤 11시가 넘어서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모든 팀원이 가트(ghat)를 따라서 한국 사람들이 많이 가는 게스트 하우스에 딸린 식당에 가기위해 나섰다. 한밤중의 정탐이 배고픔의 완화도 있었지만 그곳의 방값이 싸다고 하였기에 방값 정탐을 가는 것이 주 목적이었다. 밤중에 화장터 뒤에 있는 게스트 하우스를 찾아 나서는 것 자체가 바라나시를 너무 모른 탓이었고 개척정신이 강한 팀원들이어서 전등을 켜고 어둡고 칙칙하고 지저분한 미로의 도로를 통과하여 식당에 도착하였다. 한밤중의 정탐을 통해 빛 아래서 보여주는 바라나시의 얼굴과 침울하고 칙칙하고 머리카락이 쭈볏쭈볏서는 어둠속의 바라나시의 두 얼굴을 보는 기회가 되었다. 이른 아침의 갠지즈 강에서 행하여지는 힌두 순례자들의 목욕과 함께 자행되는 우상숭배는 생활이 곧 우상숭배임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화장한 재를 강에 뿌리고, 뿌연 물을 마시고, 소들도 목욕하고 사람도 목욕하고....목욕을 하면 도로 병이 생길 것만 같은 물인데....아예 강에 몸을 담그고 ...배를 타고 갠지즈 강을 한바퀴 돈다. 가트(강과 맞닿은 계단이란 뜻)중에 힌두교의 장례문화를 접할 수 있는 화장터 가트에는 화장을 기다리는 여러 구의 시체들이 있었다. 나무로 사용하는 그곳에는 부자들이 올 수 있고 가난한 사람들은 가트 맞은편에서 화장을 하거나 전기로 화장하는 가트를 찾는다고 한다. 화장터 가트에 가까이 가지 못하고 멀리서 바라만 보았다. 개방되어 화장되는 모습을 여과없이 볼 수 있는 힌두의 장례문화는 여전히 나에게 있어 극복해야 대상이기에 큰 담대함이 필요하였기에 멀리서 바라만 보았다. 빤치 가트옆에 있는 모스크(회교 사원)에서 젊고 어린 무슬렘 소년들을 만날 수 있었고 그곳에서 배를 타고 갠지즈 강을 밟았다. 갠지즈 강의 두 강변, 한 쪽에는 가트들로 즐비하고 가트의 맞은 편에는 모래위에 두 개골이 영화의 장면처럼 늘려 있었다. 차마 얼굴을 들고 자세히 볼 수 없었기에 디카의 셔터를 누를 수 없었다. 뱃사공의 말을 빌리면 부자들은 화장터에서 화장을 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불법으로 가트가 있는 강 반대쪽에서 화장을 하는데 반쯤 타다가 그냥 두면 개들이 와서 시신을 뜯어 먹기에 두개골이 그렇게 늘려있다고 한다. 두개골이 있는 지점에 오기 전에 여우만큼 큰 덩치의 개들을 보고 여우라고 우리 모두는 말했는데 뱃사공의 말을 통해 왜 개가 여우처럼 큰지에 대한 설명이 되었다. 우상 숭배의 진원지가 되어 버린 갠지즈 강에서 어둠속에 있는 영혼들을 향하여“이 백성이 나를 버리고 다른 신에게 분향하며”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아픈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정탐을 통해서 알고자 했던 인도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었기에 새 땅과 새 하늘이 인도 땅위에 임하기를 기도하면서 바라나시를 품었다. 우상의 진혼곡이 울리는 바라나시에 20~30명의 선교사가 사역을 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답답하고 갑갑한 마음이 조금은 위안이 되었다. 어둠이 가득한 곳에 빛을 발하기 위해 어둡고 칙칙함을 거슬려서 일하고 있는 선교사들과 숨어 있는 빛의 자녀를 위한 기도를 올렸다. 갠지즈강과 힌두대학으로 힌두교의 여리고 성으로 보이는 바라나시이지만 하나님의 때에 그 어둠을 벗고 빛 속으로 들어오기를 간절히 소망하면서 기도제목을 안고 돌아왔다.
배를 타고 갠지즈 강에서 바라본 갓트(연기가 나는 곳이 화장갓트(Ghat)
12일 저녁 부다가야를 가기 위해 인접해 있는 역인 가야로 출발했다. 바라나시 기차역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행렬속에서 뭔가 심상치 않음을 예견했지만 설마...하면서 애써 관심을 버렸다. 공직에서 은퇴를 한 맞은 편에 앉은 남인도 첸나이에서 온 육십 중반의 아저씨도 동네 사람들 80명과 함께 부다가야를 간다는 말을 듣고 기차에 탄 대부분의 사람들이 우리와 행선지가 같음을 인식하게 되었고 숙소에 대한 염려가 되기 시작했다. 방을 예약하기 위해 애써 입수한 번호로 연락 했을 때 방이 없다는 말을 들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가야(부다가야)를 찾는다는 것에 대해 예상을 하지 못했고 여행사나 여행 정보 책자에서도 연락처를 구할 수 없었기에 부다가야(가야)와 파트나에서는 직접 숙박을 찾을 계획이었다. 촌락 단위의 사람들이 대 이동을 하면서 기차에 올라탔다. 인도는 기차의 등급이 잘 지켜지지만 엄격하게 구별을 두지 않는 슬리퍼 칸의 우리는 자리의 위협을 느껴야만 했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통로에 비집고 들어왔기에 입구를 점령했고 그들은 영어가 통하지 않았고 통제할 사람이 없었다. 기차를 타기 전에 기차 차장이 우리에게 에어콘 차량을 제안한 이유를 그제야 알 수 있었다. 사람들은 많고 날씨는 너무 더워서 자리를 흥정하다가 티켓 값과 함께 3명의 차장에게 각각 티켓 값만큼의 뇌물이 포함된 가격이 에어콘 차량의 티켓 값이라는 말에 너무 비싸서 흥정을 포기하고 예약했던 좌석에 탔던 것이었다.
가야역에서 노상숙박하는 사람들
가야에 도착하니 가야역 주위는 온통 노상 숙박소였다.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누워서 잠을 자고 있었거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부다가야에는 숙소가 있지만 밤중에 도착한 사람들이 부다가야까지 가는 도로인 인적이 없는 10킬로미터의 거리에서 강도를 만날 위험이 있기에 가야에 그냥 머무는 것이었다. 기차역이 있는 부다가야에 인접한 가야는 특별히 일년 12달 365일 늘 순례자로 붐비기에 방을 구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특별히 우리가 찾은 때에는 죽은 가족을 푸자(힌두 의식)를 통해 천국으로 보낼 수 있다는 보름동안 계속되는 파트라쉬라는 기간이어서 평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았다고 했다. 비하르 주(州)에 속하는 가야는 우트라 프라데쉬 주와는 다른 분위기를 주었다. 거리에서 보는 어린 청년들(청소년이라고 해야 옳을 것 같다)의 눈빛이 사나웠기에 두려움을 주었다. 방이 없기에 가지고 있는 정보의 게스트 하우스로 가서 방을 구했지만 빈 방은 없고 한 개가 있는데 한 방에 9명이 같이 사용하란다. 가야에서의 숙소가 계속적인 기도제목이었기에 기도할 때마다 성령께서 편안한 마음과 함께 머무를 방을 구할 수 있는 확신을 주셨기에 상황은 불안했지만 평강을 가지고 한 개의 방이 있다는 게스트 하우스에 방 2개를 달라고 요구했다. 슬리퍼 침대칸의 털털거리는 선풍기 소리와 시끄러움을 뒤로한 취침을 통해 편안함이 아니지만 인도라는 척박함의 환경에 적응하였기에 비록 쾌적한 공간이 아니어도 감사였다. 직원이 자기의 게스트 하우스와 연결된 다른 집에서 방 한 개를 구해 주어서 방 2개를 구할 수 있었다. 확실한 성령의 인도였다. 작은 바퀴벌레가 다니고 벌레가 있었지만 그래도 덜덜 거리는 에어콘이 돌아가고 있었기에 샤워를 하고 빨래를 하고 잠을 잘 수 있다는 것에 대한 감사와 함께 모두가 흡족해 했다. 부다가야에 순례를 온 사람들은 숙소가 없어도 기차역 주변의 빈터와 플랫포옴에 그대로 누워서 잠을 자기에 숙소에 대한 부담을 가지지 않고 단지 기차를 타는 것에 있는 것임을 알았다.
13일 주일예배를 다같이 드리고 나서 오후에 부다가야 정탐을 갔다. 불교의 강성한 진지를 보면서 부처가 열반했다는 사원에서 죽은 가족을 위해서 핀다(밀가루를 주 재료로 하여 반죽을 하여 경단처럼 작게 만든 것)를 만들면서 그 위에 향을 피우고 주문을 외우면서 죽은 가족들이 천국으로 들어간다고 믿는 그들을 보았다. 기차안에서 만난 동네 그룹들을 그곳에서 다시 만났고 남자들은 하나같이 머리를 밀고 머리 뒤통수에 몇 가닥의 머리카락만 남겨 놓았다. 기차에서 본 사람들은 각각 무리를 지어져 사원 곳곳에 앉아서 무리를 지어 푸자를 하고 있었다. 푸자를 하고 있는 그들옆에서 우리는 영적인 어리석음에 있지만 깨닫지 못하는 그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그 영혼들을 기도 제목으로 품으면서 떠나왔다.
부다 가야를 찾은 마을 단위의 사람들
14일 아침에 파트나에 도착했다. 파트나에는 세계 각국에서 온 60개의 선교회 소속 90여명의 선교사가 사역하고 있다고 했다. 파트나에서는 알라하바드의 선교사님 소개로 카톨릭에서 운영하는 도미토리에서 여정을 풀었다. 침례교 소속 남인도에서 오신 24년동안 비하르 주에서 사역하시고 계시는 세바스찬 목사님이 우리를 안내하셨다. 더위속에서 행진하는 정탐으로 모두가 지쳐 있었지만 세바스찬 목사님의 사역지인 달릿 마을을 방문할 수 있었다. 우상 숭배의 땅들을 밟으면서 답답하고 갑갑한 마음이 달릿 마을 방문을 통해 한 줄기 빛을 보는 것 같았다. 브리쥐키소르 달릿 마을을 방문했을 때 팀원의 컨디션은 방문을 포기할 정도로 최악이었지만 달릿 마을 사역을 통해 우리는 위로와 함께 회복이 되었고 흩어져서 기도를 요청하는 집에 들어가 기도를 해 주었다. 영적인 간절함과 준비된 그들을 만나는 자체가 우리 모두에게 은혜였고 정탐의 마지막을 너무 멋있게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감사와 함께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한 확인을 통해 기쁨을 얻었고 땅 끝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만났다. 전기가 있는 집이 3가구에 공동 펌프가 3-4개 있었고 벽을 사이에 두고 집들이 닥닥 붙어 있었다. 달릿 마을에서 대각선으로 맞은편에는 상류층이 사는 동네가 있었다. 상류층이 사는 동네 입구는 시멘트로 도로가 포장되어 있었고 집들도 반듯했다. 마을에는 정부학교가 있지만 달릿 아이들이 가면 상류층 아이들이 때리기에 아이들은 학교에 갈 엄두를 내지 못한단다. 75%가 복음화된 달릿 마을에는 여러 개의 가정교회를 중심으로 여러 명의 리더(여성, 남성)가 세워져 있었다. 리더를 중심으로 각자의 집에서 금요일과 주일 저녁에 모임을 가지고 주일예배는 목사님이 계시는 마을의 교회에 참석한다고 한다. 이들의 모습이 인도의 시골에서 볼 수 있는 단편적인 모습이라고 해도 큰 어폐가 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은 뱅갈로르에 돌아와서 북쪽 카르나타카에서 온 형제들에게 상황을 물어 본 결과 별반 차이가 없었고 실생활에서 여전히 존재하는 계급주의의 단편을 보여준다고 보기 때문이다. 바라나시에서 가야(부다 가야)로 가는 기차안에서 옆의 빈자리에 앉은 젊은 아저씨(직업: 요리사)가 웃 옷을 벗고 있기에 옷을 입으라고 했더니 자기는 브라만이어서 웃 옷을 안 입는 것이 관습이라고 한 말을 떠오르게 했다. 의식의 전환을 위해 교육의 필요성을 모두가 인식을 하면서 특별히 소도시 중심의 사역에 관심을 두고 있는 내게는 사역에 대한 밑그림을 그리게 해 주었다.
파트나의 달릿 마을
15일 오후에 파트나를 출발하여 16일 아침에 델리에 도착했다. 종착역이라는 느긋함 때문인지 역에 대한 긴장을 하지 않아도 되었지만 밤새 달리는 기차에서 추워서 제대로 잘 수가 없었기에 9일간의 척박함 후에 만나는 10일째는 델리에 계시는 권사님 덕분에 된장국에 따뜻한 밥을 대접 받았고 느긋하게 델리를 둘러보았다.
북인도 정탐을 통해 인도에 대해 더 알게 되었고 견고한 우상의 도성을 깨뜨리는 작업을 위해 곳곳에 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통해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바라나시와 가야(부다가야)에서 만난 답답함과 갑갑함은 그곳에서도 선교사들이 일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위로를 얻었기에 척박할지라도 각자에게 허락하신 땅을 향해 나갈 수 있는 담대함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라는 고백을 올린다. 정탐기간 내내 정탐을 나가기 전 모여서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와 찬양으로 예배하면서 충전을 하여 정탐을 하면서 피곤하고 지쳐서 간절한 휴식이 필요할 때일수록 찬양과 말씀과 기도로 힘을 회복하고 주님을 의뢰하면서 나아갈 때 선교지에서의 승리할 수 있는 방법임을 새롭게 훈련하는 기회가 되었다.
9박 10일간의 북인도 정탐은 심한 알레르기로 인해 여행이라는 것을 접게 한 내게 있어 아주 특별한 시간이 되었다. 계획에 없었던 정탐팀과의 합류를 통해 하나님의 원하심이 무엇인지를 물었고, 부모의 마음을 잘 알지 못하기에 정탐을 통해 아버지의 마음을 알게 해 달라고 기도하면서 정탐팀에 합류하게 되었다. 알라하바드에서 정탐팀에 합류한 이유가 인도를 모르기에 인도를 알게 하기 위해 합류케 하였다는 마음을 주셨고 상감과 바라나시의 갠지즈 강에서 하나님을 떠난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아픈 마음을 느끼게 해 주셨기에 정탐을 떠나기 전에 기도했던 응답을 정탐동안 만날 수 있었다. 인도 선교사로 부름받은 내게 있어 가장 필요한 것이었기에 정탐을 통해 하나님은 알게 하셨고 깨닫게 하시도록 한 것이어서 감사와 함께 주님께 영광을 올릴 뿐이다.
주님께서 작은 나를 통해 이루어 가실 일들을 기대하면서 뱅갈로르라는 괜찮은 환경을 벗어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거두고 새로운 사역을 향한 담대함의 힘을 얻음에 감사....주님께 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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